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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11일.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모 제과회사의 과자를 나누는 날로 기억되는 날이다. 너무나 대놓고 상술이었기에 점점 의미부여가 힘들어지는 기념일인데 그마저도 이번 2019년에는 일본 불매운동의 여파로 역대 최악의 매출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그건 제과회사 사정이고 또다른 기념일을 부여하는 사람들에게는 호재가 될 수 있겠다. 출판업이나 서점업에 종사하는, 이른바 '책으로 밥 먹고 사는' 사람들에게 11월 11일은 '서점의 날'이다. 그리고 꿈꾸는 별 책방에게는 한 한국 작가의 생일이기도 하다.

 

 2019년 여름, 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서 진행하는 '작가, 서점 주인이 되다' 프로그램 대상 서점으로 선정됐다. 작가가 하루 동안 서점의 주인이 되어 운영하는 컨셉의 이벤트인데, 전국에서 단 일곱 군데의 서점만 참가할 수 있는데 거기에 꿈꾸는 별 책방이 선정된 거다. 같이 선정된 서점들을 찾아보니 당황스러웠다.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은 서점인데, 내가 어떻게 여기에 낄 수 있었을까? 운이 좋았던 걸까? 의문스러웠지만 의문보다는 반가움과 기쁨이 더 컸기에 행사를 어떻게 준비할까에 집중하기로 했다. 11월 5일부터 11일까지 진행되는 서점 주간. 이왕이면 11월 11일의 작가가 방문하길 바라며..

 

 다음날 오후, 사람이 가장 없는 시간대에 갑자기 책방의 문이 열렸다. 중년의 남성분. 이런 분이 평일 오후에 책방을 찾아오는 경우는 흔치 않다. 보통 손님이 들어오시면 '안녕하세요.'로 인사하지만, 이날은 어떤 일로 오셨는지도 여쭤보았다. 남성분의 정체는 '작가, 서점 주인이 되다'의 심사위원이었다.

 심사위원님은 북 큐레이션 관련 협회의 이사장을 맡고 있었다. 이번 행사 심사위원 자격으로 초빙되었는데, 많은 서점들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꿈꾸는 별 책방은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주변에서 '강추'를 받았고, 양심상 이 서점이 어떤 곳인지는 알아야 하지 않나 싶어 방문하셨다고 한다. 다행히(?) 서점의 컨셉, 그리고 북 큐레이션에 대해 굉장히 만족해하셨고, 추천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며 즐거워하시면서 책방을 떠나셨다. 출판사 대표로도 계시던 분이고 지금도 많은 서점을 돌아다니시는데, 책방의 구색은 물론 결제단계에서 10% 할인하는 동네서점이라는 것도 신기해하시고 만족해 하시는 것 같았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시는 길에 큐레이션 협회 밴드에 나를 초대해 주셨다.

 

 이사장님은 큐레이션협회 회장님 연락처를 전달해 주셨다. 내 명함을 전해드렸다고, 연락하면 좋아하실 거라고 말씀하시면서. 홈페이지를 보니 이사장님은 협회의 경영을, 회장님은 교육을 담당하는 것 같았다. 불쑥 연락을 드려도 될까 싶어 망설이다 한 주가 지나 월요일 점심 무렵 연락을 드렸다. 

 생각보다 굉장히 즐거운 통화 시간이었다. 15분이 되지 않는 시간 동안 회장님은 오랫동안 강연을 해 오신 분 답게 북 큐레이션에 대해, 서점과 도서관의 역할에 대해 분명하게 정제된 이야기들을 전해주셨다. 중간중간 짧게 끝내시고 싶어 하시면서도 담겨 있는 열정이 끊임없이 나오는 바람에 미안해하시는 느낌이랄까? 정말 책을 좋아하시는 분이고, 사람들에게 더 좋은 책을 전달해주기 위해 누구보다 많이 고민하시는 분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회장님은 광명 지역 공공도서관에도 강연일정이 잡혀 있다고 말씀해 주셨다. 북 큐레이션 강의의 주 대상은 도서관 사서와 일반인인데, 다들 자기만의 서점을 꾸려 가는 것에 대한 꿈이 있다고 한다. 여기에서 간단한 제안을 하셨는데,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북 큐레이션을 배우는 사람들이 자기만의 큐레이션을 통해 서점에 '큐레이션 책장'을 꾸미는 것이다.

 책방지기로서도 이 제안이 반가웠다. 아무래도 나 한 사람의 큐레이션보다는, 그 분야에 대해 열성을 가진 이들이 배우고 그걸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이 제공된다면 책장 몇 칸 안에 굉장히 강력한 메시지를 담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물론 내가 알지 못하는 책들을 들여야 한다는 위험성과 그 책들을 들이기 위한 비용이 조금 들 수 있겠지만, 상호 신뢰할 수 있는 관계에서라면 해볼 만한 도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신뢰는 책임감을 갖고 서점을 찾아오신 이사장님과 전화 너머로도 열정이 느껴지는 회장님이 있는 협회라는 데서 충분히 얻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책방의 북 큐레이션은 책방지기 혼자서 고심해서 자기만의 색깔을 내는 곳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 방문과 통화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책방을 만들어 가는 건 어떨까 궁금해졌고, 기대도 된다. 어쩌면 이 공간이 더 많은 고심의 결과물로 채워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란?

줄여서 한국서련이라고 부르는 단체. 복잡해 보이는 이름이지만 사실 단순하다. 지역별로 서점들이 조합을 구성하고 있고, 한국서련은 이 조합들이 연합해 만든 조직이다. 지역별로 조합의 운영방식과 성격이 달라 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점이 있지만, 한국서련으로 뭉치면 출판계에서 굉장히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구성원들이 모두 서점 주인이니까.